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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과 달리 제주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일 년을 지내면서 뭐가 좋았고 뭐가 아쉬웠을까?
아쉽긴 하다
지난달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은 더 이상 제주에 혼자 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을 때 엄마 혼자 집에 쓰러지셔서 돌아가신 터라 혼자 있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나 또한 제주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도 한 번도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엄마 장례식이 끝나고 제주로 내려왔을 때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늘 들어왔던 제주의 바람소리도 다 무서웠다. 우선 잠을 잘 못 잤다. 새벽 4시가 되어서 겨우 잠을 이룰 수가 있었는데 잠시 잠들었다가 일찍 눈이 떠졌다. 동생이 같이 제주로 따라온 것은 제주를 정리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는데 하루를 제주에서 자고 난 뒤 마음이 바뀌어서 못 있겠다면서 대구로 다시 가자고 했다. 부동산에 매우 싸게 권리금을 측정해서 내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제주에서 보낸 탓에 짐도 많았다. 큰 가구나 가전제품들은 모두 두고 가기로 했다. 다음에 들어오는 사람이 쓴다고 하면 넘겨줄 생각으로 하나도 정리하지 않았다. 하루에 세 박스씩 며칠간 우체국에 가서 제일 큰 박스로 짐을 싸서 보냈다. 15박스쯤 보낸 것 같다. 매일 우체국에 짐을 들고 가자 이사하냐고 물었다. 일 년을 살고 다시 간다고 택배 보내러 몇번은 더 올 것이라고 했더니 주소 안쓰고 와도 된다고 전산 기록으로 주소를 뽑아줬다. 여름날에 보내는 택배는 많이 힘들었다. 짐을 싸는 것도 짐을 보내는 것도.
이별해야 되는 사람들
참 다행인 것은 제주에 일년을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좋았다. 처음 카페를 리모델링하면서 만났던 건축소장님부터 앞 집 식당 사장님까지 제주에 살면서 나의 운은 이 사람들을 만나는데 다 쓴 것 같다. 남들은 집이든 카페든 수리하거나 공사를 할 때 돈을 떼어먹고 도망가거나 공사 일정이 예정대로 되지 않아서 많이 싸웠다고 했는데 우리는 한 번도 큰소리 난적 없이 잘 마무리되었고 앞전의 주인은 앞집 사람과 맞지 않아서 자주 싸웠다고 했는데 우리는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명절 때 혼자 제주에 있다며 명절 음식을 싸서 보내주기도 했으며 이것저것 먹을 것도 자주 챙겨주셨다. 또 앞집의 젊은 부부는 어찌나 이쁜 사람들인지 내가 호미 들고 풀을 뽑고 있으니 제초기를 들고 와서 이 땡볕에 넓은 뒷 주차장까지 말끔하게 다 정리해 주었다. 또한 처음 제주에 왔을 때부터 먼저 말을 걸어주며 이것저것 알려주었던 앞집 식당의 2층사람들. 제주에서 태풍이 올 때도 미리 준비해야 될 것들을 알려줬고 같이 밥을 먹자고도 해주었던 친절했던 사람들. 그리고 헤어짐이 가장 아쉬웠던 사람들 중엔 역시 몇 달간의 독서모임을 같이 했던 그녀들. 그녀들과는 감정적인 교류가 있었던 터라 떠나오기 직전까지도 못내 아쉬워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 왔다. 무료했던 제주에서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던 독서모임이었기에 나중에는 독서와 상관없이 일상을 나누게 된 사이여서 좀 더 오래도록 제주에 머물렀다면 우리는 더 돈독해질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식당 사장님과 손님으로 만났던 그녀. 제주를 떠나면서 제일 마음이 찡했던 사람이었던 그녀는 내가 제주에 더 머물러 있어야 될 것 같았다. 8월이면 식당일을 돌봐주었던 친정어머님과 오빠가 육지로 갈 것이라면서 마음이 몹시로 힘든 상황이었을 그녀. 마음을 나눠도 좋을 사람 같았다면서 많이 아쉬워했다. 또 몇몇 분들이 계신다. 나는 비록 제주를 떠나지만 내게 따스했던 그들을 생각하며 언제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제주.
다시 제주살이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제주살이가 다 좋았던 건 아니다. 처음 보름살이를 갔을 때는 내가 지낸 모든 날들이 너무 날씨가 좋았고 비가 단 하루도 내리지 않았던 터라 제주의 날씨가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건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 년을 살아보니 거의 많은 날들이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었다. 기분이 날씨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라 모든 날들이 흉흉하지는 않았으나 날씨가 흐리면 괜히 우울모드가 되어버렸다. 또한 바람이 불어도 일반적인 바람을 생각하면 안 된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뒷 테라스에 화분이 넘어가는 것은 보통의 일이고 간판이며 플랜카드가 찢어지는 일 또한 다반사였다. 월정리라는 바닷가 마을에 자리를 잡아서 그랬는지 염분기가 있는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손등에 하얗게 소금처럼 뭔가가 남아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제주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집 앞바다에서 돌고래를 본 것이다. 돌고래를 보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볼 수가 없었던 돌고래가 내 생일날 선물처럼 내 앞에서 뛰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생일 선물이 될 것이다. 제주의 시골인 월정리는 무척 아름다운 동네다. 물빛은 환상이었고 내가 살았던 곳이 바로 바닷가 앞이 아니라 한 블록 뒤쪽이다 보니 조금은 조용하였다. 내가 카페를 하지 않고 그냥 쉬는 목적으로 일년 살이를 했다면 어떠했을까? 처음 비장하게 내려왔던 제주에서 제대로 한번 해보지 못하고 접어야 되는 제주생활에 가장 미련이 남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물론 본업이 대구에 있다 보니 제주의 카페에 전력질주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지만 가늘고 길게라도 가고 싶었던 제주 생활이었다. 하지만 내일 일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엄마가 갑자기 이렇게 되실지 누가 예견할 수 있었을까? 아마 분명히 제주에서의 일 년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가끔은 월정리를 생각하며 그곳에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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