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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제주와 대구 반반살 이를 시작한 지 거의 일 년이 되었다. 처음에 내려왔을 때와 지금의 심정은 많이 다르다. 다시 일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냥 여행만 했을 것 같다. 일 년을 살아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딱 일 년까지 만 인 듯.
그 해 여름은 뜨거웠다.
제주살이가 시작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은 모두 육지에서 서로 다른 이유들로 이주를 해온 사람들이다. 여행 왔다가, 너무 힘들 때 제주에 왔다가 이주하게 된 친구도 있고 회사 연차를 다 모아서 제주 여행을 왔다가 제주에 반해서 한 번 두 번 계속 다니다 보니 자리 잡게 된 경우도 있고 하던 일이 잘 안 되어서 내려온 친구도 있다. 모두 저마다의 이유들이 있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더 많다. 물론 나처럼 일 년 만에 가고 싶다는 친구는 없지만. 육지에서 제주로 오는 사람들은 그냥 일년살이나 한달살이를 하러 온다면 시내 쪽보다 제주 정취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할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게 장단점은 있는데 조용한 시골마을 그것도 육지와 다른 느낌의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은 분명히 힐링이 된다. 날씨 좋은 날의 하늘은 마치 동화책에서 나온 듯이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은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일 년을 살아보니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 태풍이라도 올 때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는 것을 알고 기다리는 심정이란 마치 공포영화의 클라이맥스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사계절을 지내본 지금은 태풍이 온다면 미리 대비할 것들을 대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겠지만 작년 태풍 때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었다. 티브이에서 계속 역대급이라고 외쳐대니 처음 맞는 태풍에 어찌 심란하지 않았겠냐? 짐 앞에 세워진 전봇대가 약간 삐뜷어지게 세워져 있는데 이게 넘어지지는 않을까, 앞집 돌담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태풍이 지나가는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피부는 제주에서 한 번의 여름을 보냈을 뿐인데 어디서 평생 밭농사 지은 사람처럼 아주 건강하다 못해 까맣게 그을렀다. 반팔 입고 운전하고 동네 좀 다니고 그랬을 뿐인데 햇볕이 그렇게 강한지 몰랐다. 이 나이에 허옇게 병약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나쁘지 않겠다만 그래도 좀 심하다.
제주살이 하기 일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제주살이를 하면서 작은 카페를 겸하고 있는데 결론은 관광지에서의 카페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위치가 아주 좋거나 진짜 이 집에서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메뉴가 있다거나 확실한 포토존으로 공간을 채웠거나 어느 것이라도 충족이 되어야 된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카페들과 나눠 먹기를 했을 때 아무것도 없는 내게로 손님들이 오는 일은 많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아무것도 없는 내게라는 게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밝히지만 일단 오셨던 분들은 우리 집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어떤 특징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성수기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 나머지는 매일 시간과의 싸움이다. 우리 집만 이런 것인가 하고 바닷가 쪽으로 나가봐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제주의 많은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는 것을 봤을 것이다. 그게 관광객으로 먹고사는 지역에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실 제주로 오기 전에 내가 살던 지역에서 카페를 하려고 자리도 알아보고 했다가 결국 보름살이 하러 왔던 제주의 풍경에 취해 눌러앉은 것이었는데 이제 다 두고 다시 떠날 계획을 하고 있다. 욕심을 내서가 아니라 욕심을 내지 못할 곳이라는 것을 살면서 느꼈다. 주변에 장사하시는 분들도 그런 말씀을 하시고 작은 공간에 1인 사업자들의 고충이 다 같았다. 일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알 것 같은데 이거 알자고 너무 많은 투자를 한 것 같아 배가 좀 아프다. 육지에 나의 본업이 있고 여긴 왔다 갔다 했던 것도 카페 운영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겠지만 내가 본업을 접고 오로지 여기만 집중했다고 해도 과연 달라졌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든다. 제주는 넓고 관광객들은 가 볼 곳이 너무 많은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이라면 굳이 여행 와서까지 와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결론은 한 번의 실패가 다시 시작한다면 그때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 나는 제주살이를 정리 중이다. 부동산에 카페를 내놨고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번의 실패가 내게 또 다른 자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남은 시간을 즐길 것이다.
제주를 떠나며
이제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는 제주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근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혼자 제주에 있는 것을 반대했고 이모님께서도 멀어도 차로 갈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화를 주셨다. 카페는 부동산에 내놓았고 언제 나갈지는 모르지만 계속 동생집에 계시다가 잠시 엄마집으로 가 계신 이틀사이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모두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까지 가시지가 않았다. 처음엔 제주의 카페를 부동산에 내놓을 때 애정이 너무 많아서 엄마 건강이 좀 좋아지면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도 계속 사라지지 않았던 터였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카페에 대한 애정이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식어버렸다. 그나마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건지 본업이 따로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다행인 것인지 모르겠다. 이삿짐을 싸는 며칠 동안 그냥 제주에서의 좋은 기억들만 가져가리라 생각했다. 이곳에서 만났던 독서모임 친구들과 단골일 뿐이었는데 내게 마음을 내주셨던 단골 식당의 동생 같은 사장님,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먼저 왔던 박작가님이 계시다는 이유만으로도 제주살이가 팍팍하지만은 않았다. 이제 그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 우린 또 만나질 인연이니까. 혼자 있던 제주에서 대화를 나누며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공통된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그들이 있어서 제주가 더 아름답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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